티스토리 뷰
목차

[새찬송가 288장] 예수를 나의 구주 삼고
이것이 나의 간증이요, 이것이 나의 찬송일세
신앙생활을 오래 하다 보면 우리의 기도가 조금씩 달라집니다.
처음에는 “하나님, 이것을 주세요”라고 기도합니다.
문제를 해결해 달라고 기도하고, 원하는 것을 이루어 달라고 기도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은혜를 조금씩 알아갈수록 기도의 중심이 달라집니다.
“주님, 주님이면 충분합니다.”
내가 원하는 것을 얻었기 때문이 아니라,
예수님을 나의 구주로 모셨기 때문에 기뻐하는 것입니다.
새찬송가 288장 **「예수를 나의 구주 삼고」**는 바로 그 기쁨을 노래합니다.
“이것이 나의 간증이요
이것이 나의 찬송일세
나 사는 동안 끊임없이
구주를 찬송하리로다”
이 찬송에는 거창한 성공담이 없습니다.
오히려 한 사람의 가장 단순하고 깊은 고백이 있습니다.
“예수를 나의 구주 삼고.”
이것이면 충분하다는 고백입니다.
📌 찬송가 288장 곡 정보
- 찬송가: 새찬송가 288장
- 구찬송가: 204장
- 영문 제목: Blessed Assurance, Jesus Is Mine!
- 작사: 패니 크로스비(Fanny J. Crosby, 1820–1915)
- 작곡: 피비 냅(Phoebe P. Knapp, 1839–1908)
- 주제: 구원의 확신, 예수 그리스도, 성령, 은혜, 찬송
- 관련 성경: 히브리서 10:22, 갈라디아서 2:20, 에베소서 1:13–14
🎵 예수를 나의 구주 삼고
1절
예수를 나의 구주 삼고 성령과 피로써 거듭나니
이 세상에서 내 영혼이 하늘의 영광 누리도다
후렴
이것이 나의 간증이요 이것이 나의 찬송일세
나 사는 동안 끊임없이 구주를 찬송하리로다
2절
온전히 주께 맡긴 내 영 사랑의 음성을 듣는 중에
천사들 왕래하는 것과 하늘의 영광 보리로다
3절
주 안에 기쁨 누림으로 마음의 풍랑이 잔잔하니
세상과 나는 간곳없고 구속한 주만 보이도다
“예수를 나의 구주 삼고”
이 찬송의 첫마디가 곧 신앙의 핵심입니다.
“예수를 나의 구주 삼고.”
예수님을 좋은 선생님으로만 아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을 위대한 성인으로 존경하는 것만도 아닙니다.
나의 구주로 믿는 것입니다.
성경은 인간의 가장 근본적인 문제가 환경에 있지 않다고 말합니다.
우리의 가장 깊은 문제는 죄입니다.
그리고 죄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십자가에서 우리의 죄를 담당하시고 죽으셨으며, 다시 살아나셨습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의 구원의 근거는 자신의 감정이나 성취가 아닙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나를 위해 하신 일에 있습니다.
내가 오늘 믿음이 강하게 느껴진다고 구원받는 것이 아니고,
내가 오늘 마음이 무너졌다고 구원이 사라지는 것도 아닙니다.
나의 구원은 나보다 신실하신 예수 그리스도에게 달려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찬송할 수 있습니다.
“예수를 나의 구주 삼고.”
패니 크로스비의 눈에 보이지 않았던 세계
이 찬송을 더욱 특별하게 만드는 사람이 있습니다.
바로 작사자 패니 크로스비입니다.
크로스비는 생후 얼마 되지 않아 시력을 잃었고, 평생 시각장애인으로 살았습니다.
그녀에게 세상은 우리가 보는 것과 전혀 다른 모습이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놀랍게도 그녀는 자신의 삶을 어둠의 이야기로 기록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수많은 찬송시를 통해 하늘의 영광과 예수 그리스도의 아름다움을 노래했습니다.
그녀는 자신의 눈으로 세상의 풍경을 볼 수 없었지만, 믿음으로 바라본 세계를 노래했습니다.
그래서 「예수를 나의 구주 삼고」에는 특별한 역설이 있습니다.
육신의 눈으로 보지 못했던 사람이
믿음으로 하늘의 영광을 노래하고 있습니다.
우리에게 이것은 중요한 질문을 던집니다.
나는 무엇을 보고 살아가고 있는가?
눈앞의 상황만 보고 있습니까?
내 통장의 숫자를 보고 있습니까?
사람들의 평가를 보고 있습니까?
내 실패와 약함을 보고 있습니까?
아니면 그 모든 것보다 크신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고 있습니까?
“이것이 나의 간증이요”
후렴은 이 찬송의 심장과 같습니다.
“이것이 나의 간증이요
이것이 나의 찬송일세.”
간증은 반드시 극적인 이야기가 아닙니다.
죽을병에서 살아난 이야기만 간증이 아닙니다.
사업에 성공한 이야기도 간증의 전부가 아닙니다.
때로는 아주 평범한 한마디가 가장 아름다운 간증입니다.
“나는 예수님을 믿습니다.”
“나는 힘든 날에도 예수님을 놓지 않았습니다.”
“내가 잘해서 여기까지 온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로 여기까지 왔습니다.”
“나는 넘어졌지만 주님이 다시 일으켜 주셨습니다.”
“내가 모든 것을 알지는 못하지만 예수님을 신뢰합니다.”
이것이 우리의 간증입니다.
우리의 인생이 완벽해서 간증이 되는 것이 아닙니다.
불완전한 우리를 붙드시는 완전하신 주님 때문에 간증이 됩니다.
“온전히 주께 맡긴 내 영”
2절은 신앙의 또 다른 차원을 보여줍니다.
“온전히 주께 맡긴 내 영.”
믿음은 내가 모든 것을 통제하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내가 통제할 수 없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하나님께 맡기는 것입니다.
우리는 미래를 알고 싶어 합니다.
내일 무슨 일이 일어날지 알고 싶고,
자녀의 앞날도 알고 싶고,
경제적인 문제도 미리 알고 싶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미래의 모든 정보를 주시지 않습니다.
대신 미래의 주인이 누구인지를 알려 주십니다.
그래서 믿음은 이렇게 고백하는 것입니다.
“나는 내일을 모르지만 내일의 하나님을 압니다.”
나는 앞으로 어떤 일을 만날지 모르지만
나와 함께하실 예수님을 압니다.
그러므로 맡길 수 있습니다.
“주 안에 기쁨 누림으로 마음의 풍랑이 잔잔하니”
3절은 우리의 현실을 외면하지 않습니다.
“주 안에 기쁨 누림으로 마음의 풍랑이 잔잔하니”
여기서 중요한 것은 풍랑이 없어졌다는 말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풍랑은 여전히 우리의 인생에 찾아옵니다.
질병도 있고,
실패도 있고,
관계의 아픔도 있고,
경제적인 어려움도 있습니다.
그런데 찬송은 말합니다.
“마음의 풍랑이 잔잔하니.”
바깥의 풍랑보다 먼저
내 안의 풍랑이 잔잔해지는 것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주님을 바라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 배에 함께 계셨던 제자들도 풍랑을 만났습니다.
그들에게 예수님이 계셨다고 해서 바다가 처음부터 잔잔했던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함께 계셨습니다.
우리의 인생도 그렇습니다.
그리스도인이 된다는 것은 풍랑이 없는 인생을 사는 것이 아니라, 풍랑 가운데서도 예수님과 함께 살아가는 것입니다.
“세상과 나는 간곳없고 구속한 주만 보이도다”
이 구절은 이 찬송의 절정입니다.
“세상과 나는 간곳없고
구속한 주만 보이도다.”
얼마나 놀라운 고백입니까.
세상이 사라지고
나 자신도 사라지고
마침내 예수님만 보이는 것입니다.
우리의 삶은 정반대일 때가 많습니다.
세상이 너무 크게 보입니다.
사람들의 말이 크게 들립니다.
다른 사람과 비교하게 됩니다.
내가 얼마나 성공했는지를 생각합니다.
내가 얼마나 인정받고 있는지를 생각합니다.
그리고 때로는 나 자신이 너무 크게 보입니다.
내 문제,
내 상처,
내 실패,
내 자존심,
내 욕망이 우리의 시선을 가득 채웁니다.
그런데 복음은 우리의 시선을 돌려줍니다.
나에게서 예수님께로.
세상에서 예수님께로.
문제에서 예수님께로.
실패에서 예수님께로.
죽음에서 생명이신 예수님께로.
그때 우리의 마음에 찬송이 시작됩니다.
구원의 확신은 나의 감정이 아니라 예수님에게서 옵니다
“나는 정말 구원받았을까?”
신앙생활을 하다 보면 이런 질문이 생길 때가 있습니다.
기도가 잘되지 않을 때도 있습니다.
말씀을 읽어도 마음에 감동이 없을 때도 있습니다.
죄를 반복해서 지을 때도 있습니다.
그러면 구원의 확신까지 흔들립니다.
그러나 구원의 확신을 나의 감정에만 두어서는 안 됩니다.
성경은 우리가 그리스도를 믿을 때 성령께서 우리를 인치셨다고 말씀합니다.
우리의 구원은 내가 얼마나 강하게 느끼느냐에 달려 있는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이라는 객관적인 복음의 사실에 달려 있습니다.
물론 우리의 믿음은 자라고 성숙해야 합니다.
때로는 의심과 싸우기도 합니다.
그러나 그때마다 다시 복음으로 돌아가야 합니다.
“예수님이 나의 구주이십니다.”
이것이 우리의 가장 확실한 고백입니다.
이것이 나의 간증입니다
인생을 오래 살아갈수록
우리는 더 많은 것을 내려놓게 됩니다.
젊을 때 중요하게 생각했던 것이
어느 순간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느껴질 때도 있습니다.
사람의 인정도 영원하지 않습니다.
재산도 영원하지 않습니다.
건강도 영원하지 않습니다.
우리의 젊음도 영원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한 가지는 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그래서 마지막에 우리의 삶을 돌아보며
이렇게 말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내가 많은 것을 이루었습니다”가 아니라,
“예수님이 나의 구주가 되어 주셨습니다.”
“나는 한 번도 실패하지 않았습니다”가 아니라,
“실패할 때에도 주님이 나를 붙드셨습니다.”
“나는 강한 믿음으로 살았습니다”가 아니라,
“약한 나를 주님께서 끝까지 인도하셨습니다.”
이것이 나의 간증입니다.
이것이 나의 찬송입니다.
그리고 마지막까지 찬송하리라
후렴의 마지막은 이렇게 끝납니다.
“나 사는 동안 끊임없이 구주를 찬송하리로다.”
참 아름다운 고백입니다.
찬송은 상황이 좋을 때만 부르는 노래가 아닙니다.
살아 있는 동안 부르는 노래입니다.
기쁜 날에도 부르고,
눈물 나는 날에도 부릅니다.
건강할 때도 부르고,
아픈 날에도 부릅니다.
무언가를 얻었을 때도 부르고,
무언가를 잃었을 때도 부릅니다.
왜냐하면 우리의 찬송의 이유가
환경이 아니라 예수님이기 때문입니다.
오늘도 예수님이 나의 구주이십니다.
내일도 예수님이 나의 구주이십니다.
그리고 우리의 마지막 순간에도
예수님은 여전히 우리의 구주이십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삶 전체가 하나의 찬송이 될 수 있습니다.
“이것이 나의 간증이요
이것이 나의 찬송일세.”
🙏 오늘의 묵상
오늘 나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입니까?
내가 가진 것입니까?
사람들의 인정입니까?
앞으로 이루어야 할 목표입니까?
아니면 예수 그리스도께서 나의 구주가 되셨다는 사실입니까?
잠시 모든 것을 내려놓고 마음속으로 고백해 보십시오.
“예수님, 주님이 나의 구주이십니다.”
오늘 내가 해결하지 못하는 문제가 있어도 괜찮습니다.
내가 미래를 알지 못해도 괜찮습니다.
내가 약해도 괜찮습니다.
왜냐하면 나의 구원이 나에게 달려 있는 것이 아니라
나를 붙드시는 예수 그리스도께 달려 있기 때문입니다.
오늘도 우리의 삶이 이렇게 고백하는 찬송이 되기를 바랍니다.
“이것이 나의 간증이요
이것이 나의 찬송일세.”
🙏 기도
사랑의 주님,
오늘도 예수님을 나의 구주로 고백하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세상을 바라보며 흔들렸던 우리의 눈을
다시 십자가의 예수님께로 돌려주소서.
내가 가진 것보다
주님을 더 귀하게 여기게 하시고,
사람들의 인정이나 세상의 성공보다
예수님을 아는 기쁨을 더 크게 누리게 하소서.
마음의 풍랑이 일어날 때
상황만 바라보지 말고
우리와 함께하시는 주님을 바라보게 하소서.
넘어졌을 때에도 은혜를 기억하게 하시고,
실패했을 때에도 복음을 붙들게 하시며,
마지막 순간까지 예수님을 나의 구주로 고백하게 하소서.
우리의 인생이
말로만 하는 신앙고백이 아니라
삶으로 드리는 간증이 되게 하소서.
“이것이 나의 간증이요
이것이 나의 찬송일세.”
나 사는 동안 끊임없이
나를 구원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찬송하게 하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 오늘의 한 문장
“세상이 흔들리고 내가 흔들려도, 나의 구원자 예수 그리스도는 흔들리지 않으십니다.”
예수를 나의 구주 삼고,
이것이 나의 간증이요 이것이 나의 찬송입니다.
새찬송가288장, 찬송가288장, 예수를나의구주삼고, 예수를나의구주삼고가사, 찬송가288장가사, BlessedAssurance, 블레디드어슈어런스, 패니크로스비, 패니크로스비찬송, 피비냅, 구원의확신, 구원의기쁨, 예수그리스도, 예수님을나의구주로, 하나님의은혜, 십자가의은혜, 성령과피, 거듭남, 나의간증, 신앙간증, 믿음의고백, 구속의은혜, 주안의기쁨, 마음의풍랑, 성경묵상, 기독교묵상, 찬송가묵상, 찬송가해설, 은혜의찬송, 찬양과예배, 히브리서10장22절, 갈라디아서2장20절, 에베소서1장13절, 복음, 기독교블로그